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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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80050788
한자 金元圭
영어공식명칭 Gim Wongyu
이칭/별칭 도원(道圓)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울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민화
[정의]
울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정치인.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도원(道圓).

[활동 사항]
김원규(金元圭)[1924~1995]는 1924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반구대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언양보통학교를 졸업한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동경철도학교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여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여러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원양어업회사인 대원어업 대표를 맡았다가, 인척인 이후락(李厚洛)의 권유로 울산관광호텔 건설에 참여하였다. 이후 울산흥농 대표, 언양잠사 대표를 맡으며 울산 지역 경제계에서 활동했고, 대한곡물협회의 이사와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1973년~1988년 상북학원 이사장으로 선임되어 울산 지역의 인재 양성에도 기여하였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고, 이후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3년 2월 제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울산과 울주를 포함하는 경상도 제4선거구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재직 시 울산공업단지 공해대책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상공분과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제1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본인의 공천을 포기하고 이후락의 무소속 출마를 도왔다. 이로 인해 당 조직을 혼란시켰다는 사유로 1978년 11월 민주공화당에서 제명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 시도를 하다가 반발로 인해 출마하지 못하였다. 1988년에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1995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서하리 선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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